우리들 시민사회 인사들은 우리 국민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사회에 대한 총체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현실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다. 그간 우리사회가 정치위기나 경제위기를 적잖이 겪었지만 지금처럼 이념갈등, 공동체 해체 위기까지 겹쳐 총체적 위기감을 느낀 적은 일찌기 없었다. 이에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1. 경제위기 지금 우리는 IMF 때 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매년 50만 명씩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 중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결혼 및 출산율에도 심각한 타격이 오는 상황이다. 신용불량자는 4백만 명에 달하고 있고 절대빈곤층은 5백만 명을 넘어 중산층의 붕괴와 빈부의 양극화가 과거 어느 때 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저소득층은 장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고 사회통합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경제성장 잠재력은 종래의 5-6%에서 3%로 하락하고, 대부분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포퓰리즘(대중적 인기영합주의)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 국가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국민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2. 공동체 해체와 사회위기
우리를 무엇보다도 불안케 하는 요인은 우리사회의 해체위기이다. 우리사회 어디에서도 권위를 찾아볼 수 없고 스승과 어른을 존경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사회는 극단적인 편가르기와 대결구도 속에서 집단이기주의만이 횡행하며, 사회 구석구석에서 가치관의 혼돈과 붕괴가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가정이 파괴되어 이혼율과 자살률이 급증하고 나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이민을 가고 싶다는 사람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이미 사람들이 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보다는 이기적인 해결책 강구에만 급급한지 오래 되었다. 게다가 극심한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져 타인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유기하고 있다. 공동체의 해체위기가 오늘처럼 심각한 적이 없었다. 국민들은 지치고 미래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다. 국민의 마음이 이 땅을 떠나고 있다. 연대의식과 공동선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3. 이념갈등과 민주주의 위기
우리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이념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북한과 미국에 대한 세대간, 집단간 견해차가 커서 우리사회의 이념적 양극화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이념갈등의 심화가 우리사회의 이념적 균형감각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지난 1-2년 동안에 우리사회에 反美의 목소리는 과도하게 커지고 북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크게 약화되어 이로 인해 우리사회가 국가정체성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의 독재로 인한 인권문제와 안보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미국이 잘못할 때에는 당당하게 異意를 제기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공고한 한미동맹관계가 한국의 안보와 안전, 그리고 발전의 기반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부시행정부에 대한 문제제기와 反美는 구분되어야 한다. 昨今의 이념적 갈등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용공으로 낙인찍힐까봐, 또 지금은 보수로 몰릴까봐 말을 못하고 있다는 어느 원로 작가의 고백은 우리나라 지식인의 고민을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인터넷 시대 이후 익명의 언어폭력집단의 횡포가 두려워 대다수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마치 한국판 문화혁명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을 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어 국민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 여기에 낙천낙선 운동 등 시민사회의 명분을 독점하려는 과도한 참여방법은 그것이 갖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다수 국민을 침묵하는 구경꾼으로 만들고 있는 오늘의 민주주의 위기와 국민을 볼모로 하는 정치위기는 우리 사회를 양극적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사회의 위기극복 능력을 크게 약화시켜 국민을 더욱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앞으로는 양극단의 극한적 대결이 아니라 양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사이의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거쳐 모두가 공감하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4.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에게
노무현 정부가 기성의 낡은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 속에서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회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선진국 진입에 대한 기대는 더욱 희박해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은 이러한 총체적 사회위기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위기의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없이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이점을 깊이 인식하고 책임을 절감하여 총선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의 위기극복을 위한 국가적, 민족적 차원의 노력에 나서야 한다. 우선 편가르기가 아닌 국민통합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이점에서 대통령의 “지배세력 교체”발언은 매우 유감스러웠다. 또 국가경쟁력 강화와 경제살리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인기영합적 대책을 택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이 인정되고 스승과 어른이 존경받고 가정과 도덕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회복시켜 공동체 해체위기를 막아야 한다. 탈권위를 강조한 나머지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 그리고 좋은 전통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 질타는 정부여당 못지않게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면서도 건전한 야당구실을 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을 향해 있다. 지금 국민은 야당이 깊은 참회와 死卽生의 자세로 새롭게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올바르고 강한 야당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기회에 부패와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정당으로부터 양심적이고 개혁적이고 경륜있는 정당으로 철저하게 환골탈태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번 대통령 탄핵움직임에 대해 상당히 큰 우려를 하고 있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이의를 제기한 것은 법 집행을 위해 서도 옳지 못한 처사였지만 그렇다고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야당이 탄핵을 강행하는 것도 적절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야기한 일련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여야 하며 야당도 탄핵움직임을 철회해야 한다. 아울러 행정부는 조금이라도 관권선거 의혹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공정한 선거관리에도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여권의 자기만족적인 아마추어리즘과 야당의 수구적인 舊態의 대립의 악순환으로 고통을 겪어 왔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이 근본적인 자성을 통해 지금의 혼란을 생산적인 진통기로 만듦으로써 선순환의 새 길을 열어가야 할 때다.
5. 검찰에게
그동안 검찰이 정치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하여 이를 밝혀내고 이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정치개혁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로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와서 공정성을 의심받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검찰이 제아무리 공정하게 수사를 하더라도 기업이 권력을 쥔 여권의 불법정치자금 비리를 공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편파성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공정한 원칙수사를 하여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정치비리를 근절하여야 한다. 또한 여ㆍ야는 정치비리에 관한 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통감하고 정치비리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누가 덜 부패했는가를 가지고 다투는 여야정치인을 볼 때마다 국민은 눈과 귀를 가리고 싶은 심경뿐이다. 우리는 검찰이 청와대를 비롯한 여야의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기를 원한다. 처벌수위 또한 공정성의 원칙 하에 종합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비리 수사가 정치적 탄압의 수단이 되고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경제 살리기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되어야 한다. 그동안 국회의원은 물론 기업인도 다같이 잘못된 정치제도와 정치관행의 희생자였음을 인지하고 기필코 정치제도 개혁과 정치자금법, 선거법의 개정 등의 제도개혁을 통해 지난 관행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6.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IMF경제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국가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따라 남미와 같이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인가가 판가름되는 중차대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사회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국민적 움직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나라가 특정정권이나 정파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나라인 만큼 더 이상 나라가 추락하도록 좌시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가정의 붕괴, 권위와 신뢰의 붕괴, 극단적 이기주의와 편가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나라를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구함으로써 우리국민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들 시민사회 인사들은 우리 자신부터 그간의 안일했던 자세를 크게 반성하고, 총체적 위기의 극복을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설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우리는 사회 각계가 나라 살리는 운동에 적극 나섬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발전의 계기로 전환시켜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