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족동포는 어떤 사람들인가? 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나. 왜 코리안드림이 생겼는가? 다. 코리안드림의 후유증 라. 국내체류동포를 위한 장기적인 근본대책은 무엇인가? 2. 서울조선족교회와 안산조선족교회의 시작 3. 지나간 5년의 발자취 4. 서울조선족교회의 목회현황 가. 교역자 및 전임간사 나. 예배와 성례 다. 교세현황 라. 목회적 특성 5. 서울조선족교회의 프로그램 가. 목회 프로그램 나. 복지 및 인권 프로그램 다.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 6. 서울조선족교회의 꿈 7. 조선족목회 5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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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족동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조선족은 주로 동북3성(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집단으로 거주함으로써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왔으나 1990년 이후로 대이동을 시작하여 한국으로의 입국(15만추정), 청도, 위해 등 연안지역으로의 이동(20만추정), 북경(5만추정), 내몽고 등 전국각지로의 이동, 그 외에 미국, 일본, 러시아, 유럽, 동남아, 호주, 남미 등 전 세계 각지로의 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선족의 인구는 220만 명이었으나 한국국적 취득으로 인한 중국국적 포기, 계속된 출생률 저하로 인구감소를 겪어 1990년 제4차 인구조사에서는 192만으로 집계되었고 이중 20여만 이상의 인구가 해외에 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중 12번째 인구규모를 갖고 있어 왔습니다. 조선족동포들은 1870년 이후 생활고 때문에,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그리고 일제의 강제이주에 의해 만주(동북3성)에서 살게 되었으며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한 길림성에는 주로 두만강 유역의 함경도 출신이, 요녕성에는 압록강유역의 평안도 주민 및 일제 강제이주에 의한 경상도(다수), 충청도, 전라도 출신(소수)이 거주하였고 흑룡강성은 직접 그곳으로 이동한 소수의 주민과 길림성, 요녕성 이주자 중 흑룡강성으로 재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족은 동북지역에서 논농사를 개척한 민족입니다. 중국에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된 비교적 최근까지 쌀값이 높았으므로 한족 등 타민족보다 높은 경제수준을 누려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족은 교육열이 높아 중국최고의 문화, 교육수준을 자랑해 왔고 인문계를 선호하여 한족은 理科가 70%인데 반하여 조선족은 文科가 70%를 차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이후에 귀국해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북에 김일성정권이 들어서면서 남쪽으로 올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결국은 중국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나. 코리안드림의 원인과 전개과정
1990년대 이후 조선족동포들의 삶에 큰 변화가 오게 되었습니다.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쌀값이 하락하여 조선족동포들이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동포들의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등록금이 비싸져서 농사를 지어서는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도 없어졌습니다. 또 조선족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기에는 기술도 없고 중국어도 유창하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해결의 길은 한국에 노동일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중국보다 열배나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선족은 조선말을 유창하게 잘합니다. 이 점은 특히 고려인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은 불행하게도 모국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국에 와서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한국에 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조선족은 너나 할 것 없이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에 오는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한중수교이후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금의환향이 이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나갈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는 산업연수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연수생으로 가려고 해도 최소 7백만 원에서 천 이백만 원의 돈을 내야 했습니다. 응모자가 많으니까 송출업체가 송출비를 턱없이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천 만 원 가량의 돈을 쓰고 연수생으로 나간 사람들은 중도에 이탈하거나 혹은 합법체류를 끝낸 후에 다시 불법체류를 하게 됩니다. 빚을 다 갚고 어느 정도 돈을 벌어 귀국하려면 최소한 5년은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올 때 천 만 원의 빚을 지고 들어오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지 중간에 부로커가 난무하여 각종 방법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불법체류하게 되었습니다. 친척방문, 유학, 관광, 밀입국, 국제결혼, 공무입국 등으로 입국방법이 다양해지면서 한국에 체류하는 동포들의 숫자도 15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불법체류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대책으로 일관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불법체류자를 잡아 무조건 추방시키는 정책을 밀고나갔고 이에 대해 서울조선족교회는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항의단식으로 맞서왔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2년 3월, 1년 후인 2003년 3월 31일까지 모든 불법체류자는 출국하라는 발표를 했고 이에 대해 서울조선족교회는 다시 23일간의 무기한 단식으로 이에 저항하였고 정부는 결국 새로운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003년 정부는 고용허가제 부칙조항을 통해 입국한지 3년이내인 사람은 2년을 더 있도록 하고 3년에서 4년 사이는 최고 5년까지 있도록 하며 2003년 3월 31일 현재 4년이 넘는 사람은 2003년 10월 15일까지 출국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방침 역시 동포들의 상황과 맞지 않아 대부분의 동포들이 귀국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는 고심끝에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5천7백명의 동포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여 국적회복 신청을 하고 헌법소원을 내었으며 2천8백명의 동포들이 서울조선족교회, 명성교회, 소망교회, 지구촌교회, 새문안교회, 강변교회, 강남교회, 인천순복음교회로 나뉘어져서 16일간 단식투쟁 끝에 “일단 귀국하면 6개월후에 재입국하도록 한다.”는 답변을 정부로부터 받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국적회복의 길도 크게 확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금년 2월말까지 약 2천명의 동포들이 귀국하였고 이들은 6개월 후의 재입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3월말에는 국적취득의 길이 과거보다는 크게 열려 많은 사람들이 국적취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동포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어 중국으로 추방되는 불법체류자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어 많은 동포들이 고통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 코리안드림의 후유증
코리안 드림은 한편으로 기회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청난 댓가를 겪게 했습니다. 우선 중국 조선족사회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조선족마을의 인구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때로는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하고 열 개의 조선어학교 중 8개는 이미 문을 닫았으며 학생들은 漢族학교로 전학하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러시아 등 해외거주자의 숫자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해외로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새로운 산업도시로 이동하였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한국가기 위한 돈 마련을 위해 유흥업소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리안 드림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황금만능주의를 부추긴 셈입니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오려면 약 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내야 합니다. 이 금액은 중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오거나, 위장결혼, 위장입학, 위장공무입국, 위장친척방문, 위장관광, 밀입국 등 입국방식과 상관없이 공정가격이 되었습니다. 이 돈을 내고 한국에 오면 일년 반 동안 이 빚을 갚아야 합니다. 고율의 이자 돈을 쓴 사람은 이자까지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약 3-4년 동안 돈을 버는데 3년이 지나면 대개 씀씀이가 헤퍼져 저축을 많이 하지도 못합니다. 한국에 온지 4 - 5년이 되면 열 가정 중 7가정이 깨진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60년대에 중동에 노무자로 갔던 가정보다 더 심합니다. 처음에는 자녀를 대학공부 시키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는데 부모가 없는 동안 자녀가 삐뚜러져 자녀교육에도 실패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깨지지 않기 위해 중국에 남겨놓은 배우자를 돈천만원을 주고 데려오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는 전 가족이 한국에 옮겨와 살게 됩니다. 그리고 5-6년 이상 한국에 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중국에 돌아가는 것이 끔찍해집니다. 한국은 물자도 풍부하고 돈도 많이 벌고 날씨도 좋고 도시도 깨끗하고 더구나 고향이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 주저앉는 동포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 지금은 국내체류 조선족이 약 15만 가량 되었습니다. 현행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한 이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고 그만큼 중국조선족사회는 가속도적으로 붕괴될 것입니다. 또 조선족 可姙여성의 숫자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한족은 한명, 조선족은 두 명의 자식을 낳을 수 있으나 임신 가능한 여성 중에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개는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 나가 일하고, 술집여성으로 빠지고 있어 새로 탄생하는 조선족 아기의 숫자는 지난 10년 동안 사분지 일로 줄었습니다. 조선족사회의 붕괴위기의 또 한 측면은 경제적 측면입니다. 조선족경제가 발전하려면 한국과의 왕래가 용이하여 한국의 선진문물을 들여올 뿐만 아니라 한국과의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한국에 갈 때마다 천만 원을 들여야 하므로 왕래가 심각하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조선족사회의 번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도 아파트를 사고 난 후에는 우물쭈물 나머지 돈을 다 소비하고 다시 한국으로 돈벌러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일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적인 恐慌입니다. 코리안 드림의 과정 속에서 대부분 돈의 노예가 되어 가정윤리 등 다른 정신적 가치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너무도 암담합니다. 1949년 연변에 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될 당시의 조선족의 인구비율은 72%였으나 코리안드림과 산업화 현상,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어 지금은 37%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조선족학자들은 이대로 가면 향후 6, 7년 이내에 인구가 20%까지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 이하가 되면 조선족 자치주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전부 코리안 드림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한국정부가 코리안 드림에 대한 바른 대처를 하지 못해 현재의 조선족사회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입니다. 한국정부가 조선족동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여 조선족사회의 붕괴도 막고 동포들의 한도 풀어주는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라. 조선족동포의 문제를 해결할 근본대책은 무엇인가?
(1)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는 조선족동포들의 천부적 권리입니다. 아무도 이 권리를 빼앗을 수 없고 중국정부도 결코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를 실천에 옮길 때에는 중국정부의 입장, 조선족 동포사회의 앞날, 한국의 현실, 이 권리를 원하는 동포들의 사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향후 1년 내로 헌법재판소는 동포들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릴 것이 확실시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모든 법적, 외교적 상황, 국민적 여론을 고려해 볼 때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권리의 집행 방식은 매우 점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영주권제도를 도입하여 중간단계를 두고, 매년 국적회복 숫자의 상한선을 두고, 한국이 원하는 인력부터 도입하고,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부터 영주권을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절박한 상황에 놓여져 있는 동포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아야하고 연로하신 부모를 당연히 자식이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부모와 자식이 서로 국적이 달라 중국국적을 가진 부모가 추방당해야 한다면 이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정부는 이들의 국적부터 회복시켜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1992년 한중수교 이전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체류하고 있는 동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자식은 이미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하루빨리 국적을 주어 한국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고려인들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도 추진되어야 합니다. 일전에 러시아의 소수민족 담당관리가 한국정부와 고려인의 이중국적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회담을 가질 용의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 문제에 대해 중국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고려인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2) 연변자치주 돕기 운동 앞으로 조선족동포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가 큰 방향이고 이에 따라 한국국적을 취득하거나 한국에서 취업하는 동포의 숫자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연변자치주의 조선족인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청도, 상해, 북경, 천진 등으로 이주하는 동포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여 연변자치주의 조선족인구는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포들이 일구어놓은 삶의 터전이 붕괴되는 결과를 빚습니다. 그러나 조선족의 삶의 터전이 붕괴되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연변자치주라는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조선족이 스스로 연변에서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동포들이 한국에 취업하러 오기를 희망하지만 사업적 성공의 기회는 중국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한국으로 취업하러 오는 흐름 못지않게 중국으로 돌아가는 흐름을 크게 키울 수 있습니다. 장기체류라고 하여 국내체류 동포를 중국으로 추방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중국으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조선족동포가 3D업종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배우러 오도록 방향을 조금 바꾸어 주면 이들은 훨씬 더 많이 돌아가게 됩니다. 이를 위해 3D업종에 취업하는 비자가 아니라 기술교육을 받는 비자를 발급하고 이 기간동안 취업도 가능하게 하면 기술을 배운 동포들은 훨씬 더 쉽게 중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 연변자치주를 위시한 중국 조선족사회가 경제적으로 잘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운동이 나와야 합니다. 특별히 국내체류 중국동포들은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금으로 납부했고 엄청나게 많은 보증금이 국고로 환수되었습니다. 이 돈이라도 중국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해 되돌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조선족사회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대표적인 조선족사회인 연변을 잘 적극 지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제 막 새로 형성되고 있는 북경, 청도, 천진 등지에 새로운 조선족타운을 건설하기 위한 지원활동에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3) 제도개혁의 과제들 조선족동포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 큰 방향이라고 할 때 국적회복이 본격화되기 전이더라도 동포들이 더 많이 한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우선 불법체류자의 수가 극소화되고 불법이 합법으로 전환되고 나면 조선족동포의 한국입국이 용이해져야 합니다. 특히 이제까지 한번도 불법체류를 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5년짜리 복수비자를 발급해 주어야 하고 그동안 매우 까다로 왔던 취업비자의 발급도 앞으로는 용이해져야 합니다. 특히 앞으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미리 조선족동포를 고용해서 사전훈련을 시키기를 원하므로 동포들이 중국진출 기업에 취업할 경우 취업비자의 발급이 용이해져야 합니다. 또 동포를 위한 기술교육비자가 새로이 만들어져서 3D업종에 취업하기 위한 입국에서 기술을 배우기 위한 입국으로 동포들의 흐름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이 한국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자식이 한국대학에 진학했을 경우 그 부모가 자식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부모가 학자금을 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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