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4.08.23 14:45 10' / 수정 : 2004.08.25 17:25 11' 중국 선양 총영사관에 모인 중국동포들
“한국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임신 7개월째입니다. 올 들어 합법적인 체류 기간이 지나자 정부에선 일단 중국으로 돌아가면 6개월 내에 재입국을 시켜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선양 영사관에서 비자를 안 내줍니다. 비자 발급이 늦어져 뱃속의 아기를 중국에서 낳게 생겼습니다.” (임신 7개월의 중국동포 여성)
오병성 총영사 일문일답
▲ 지난 21일 중국 선양총영사관 건물 앞은 영사관의 한국비자 발급에 대한 불만을 품고 100여명의 중국 동포들이 몰려들었다./ 정순화 조선일보 인턴기자
지난 21일 중국 선양의 선양총영사관 건물 앞은 영사관의 한국 비자 발급에 대한 불만을 품고 모여든 100여 명의 중국 동포들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최근 중국 동포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 비자 발급시 브로커와 영사관 관계자의 밀착 의혹과 관련, 현지 실태 조사에 나선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한나라당 원희룡·정문헌 의원을 만나기 위해 몰려들었다.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에 있는 목단강에서 하루를 꼬박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 중국 선양총영사관(왼쪽) 측은 한나라당 원희룡(오른쪽) 의원 등 국회의원 3명에게 비공개로 비자 업무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순화 조선일보 인턴기자
서울조선족교회(담당목사 서경석)의 주선으로 1박 2일간 선양을 방문한 의원 3명은 이중 50명의 중국 동포들을 개별 면담했다. 중국 동포들은 “서류가 가짜든 진짜든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비자가 나온다”며 “한국에 들어간 사람들 중 적게는 500만원 부터 1000만원까지 쓰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중에는 이미 브로커에게 돈만 건내고 비자를 못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 동포 김봉수(가명, 37)씨는“평일에 노란 봉투를 갖고 영사관 앞에 오면 브로커들이 먼저 접근해 ‘돈을 주면 접수를 안해도 바로 비자가 나온다’며 유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도 빚을 내서 브로커에게 돈을 쓴 대여섯 명이 한국에 갔다”며 “서류를 위조해 준다며 이름까지 바꾸라는 사람도 있는데 난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병성 총영사는 “영사들이 브로커와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 총영사는 “비자 발급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브로커들과 연결된 그 어떤 증거도 없다”며 “자체적으로 직원들의 교육과 감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사관 측은 “그러나 브로커들의 성행에 대해 알고 있고, 중국 공안 당국에 수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 선양총영사관에 따르면 내년 1월까지 비자 발급 대기 중인 중국동포의 수는 무려 3만 여명에 이른다. /정순화 조선일보 인턴기자
영사관에 따르면 8월 21일 현재 한국 비자를 신청해 내년 1월까지 대기 중인 중국 동포의 수는 무려 3만 여명에 이른다. 영사관 측은 “영사관은 불법체류 가능성이 있는 중국 동포의 입국을 엄격하게 심사하라는 한국 외교부의 훈령에 따라 과거 불법 체류의 전력이 있거나 불법 체류 가능성이 의심되는 경우를 포함, 현재까지 비자를 신청한 중국 동포의 약 26.8% 인 8000여 명의 발급을 거부했다”고 밝혔다고 의원단은 전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불법 체류 가능성이라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같은 조건인 경우 브로커를 통하면 비자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돈다”며 “현지에서 채용된 사무 보조원들이 중국 사회에 만연된 부패 관행에 익숙한 것도 배제할 수 없어 브로커들이 끼어들 틈새는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이어 “서류와 전화 인터뷰 만으로 심사가 이뤄지는 현재의 비자 발급 시스템 안에선 서류 위조 등 브로커들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친척방문 비자를 받기 위해 친척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주고받은 편지나 사진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여러 서류에서 동일 사진에 얼굴만 바꾼 경우가 적발되기도 한다는 것. 전화 인터뷰의 한계도 지적된다. 직접 인터뷰가 아니어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서경석 목사는 "전화 인터뷰를 담당하는 실무자들과 연결된 브로커들이 질문 내용을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 영사관은 하루 평균 700~800여 건, 1년에 약 10만 건의 비자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은 서류심사 업무를 보고 있는 실무자들의 모습. / 정순화 조선일보 인턴기자
한편, 영사관 측은 비자 발급 업무 적체의 근본 원인으로 “영사 인력 부족”을 꼽았다. 현재 선양영사관에서 비자 업무를 보는 영사는 총영사를 포함 11명과 한국인 실무보조자 3명으로 모두 14명이다. 영사관은 하루 평균 700~800여 건, 1년에 약 10만 건의 비자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직접 인터뷰를 할 여력이 없는 것도 여기 있다. 영사관 측은 20명 정도의 증원을 원하지만 2002년 체결된 한-중 양해각서에서 영사의 수를 14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문헌 의원은 “중국과의 협의를 통해 영사관의 인력을 증강하고, 단계적으로 중국 동포의 자유 왕래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 밝혔다. 원희룡 의원은 “근본적으로 불법 체류를 막아야 한다는 지나친 의심의 눈초리로 중국 동포들을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경석 목사는 “비자 신청이 기각됐을 때 불허 사유를 알려줘 선의의 피해자를 막는 게 급선무”라며 “선양 현지에 사무실을 열어 중국 동포들의 애로 사항을 계속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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