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1-12 18:55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에서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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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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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주인되는 정치


경실련 사무총장을 그만두고 경실련의 국제화작업에 몰두할 때 나는 앞으로 5~6년 동안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사회의 개혁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 뒤의 과제들을 준비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7~8개월 동안 여러 사업들을 의욕적으로 진행시켰다.

그런데 6.27선거를 보면서 그야말로 정신이 버쩍 났다.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구나.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 상태로 가다가는 사회의 개혁이고 뭐고 모든 것이 실패하고 말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는 우리사회의 개혁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까지 들었다.

때문에 나는 이런 상태에서는 미래를 위한 준비의 작업을 당분간 뒤로 미루고 현재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먼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개혁정치세력이 정치권에 진입해 우리 사회전반을 빠르고 신속하게 개혁시키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사실상 미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의 강요와도 같은 권유도 많았지만, 만약 이러한 절박한 사회인식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내가 경실련 국제화와 관련해서 시작했던 아태포럼회의나 북한동포돕기운동, 베트남돕기운동, 교회연합운동 등은 시작만 해놓고 손을 놓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사업이었고 나로서도 꼭 성공시켜 보고 싶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개혁신당에 사무총장으로 참여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이런 큰 일들을 중단하는 대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바램인 정치개혁의 대의를 현실정치에서 실현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개혁신당은 비교적 개혁적인 인사들이 모인 정당이므로 처음부터 개혁정치의 색깔을 분명히 했지만, 민주당과의 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자칫 애초에 우리가 가졌던 정치개혁의 대의가 훼손될까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사실 나는 그것을 관철시키기 못하면 통합의 명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덕분에 우리는 민주당과 통합하면서 크게 4가지 개혁을 성취했다.

우선 첫째 미국식 프리마리제도, 즉 예비선거의 도입을 이뤘다. 이번 총선을 지나고 대선 시기가 되면 우리 당은 전국을 누비면서 6개월간 예비선거를 할 것이다.

대권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출마해서 당원이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 대권후보를 뽑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적어도 1백만명 정도의 당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시별로 투표를 해나가면서 당원가입캠페인을 벌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해 9월 대만의 야당인 민진당이 예비선거를 했던 결과를 봐도 이정도의 당원증가가 꿈처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한다. 민진당의 경우 대권후보를 뽑는 선거에서 한 후보가 18만표 얻고 다른 후보가 12만표를 얻어 앞의 후보가 대권후보 되었는데, 그것은 민진당이 이과정에서 30만명의 당원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민진당은 바로 이 예비선거 과정을 통해 여당을 위협하는 위력적인 정당으로 성장했다.

대만은 우리보다 정치적으로 후진국이고, 인구도 적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예비선거과정을 통해 1백만명의 당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과연 건강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당은 어떤 모습인가’를 뚜렷하게 보게 될 것이다. 낡은 정치와 새정치의 차이, 소위 몇몇 보스를 중심으로 한 맹주정치와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정당의 차이가 무엇인가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도입하면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 당권을 장악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 개혁신당과 민주당과의 통합이 원만하게 이뤄진 것도 어찌 보면 이기택 현 상임고문이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반드시 당권을 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고문은 상임고문으로 물러나 앉았지만, 얼마든지 대권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따라서 이고문은 당권을 쥐기 위해 무리한 싸움으로 벌이고 그과정에서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 보다 양보를 통해서 보다 큰 정치인임을 보여 주었고 그런 과정에서 그동안 실추된 인기도 상당 부분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공천권을 당대표가 쥐지 않고 국민에게 돌려주는 정당은 훨씬 개혁적인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지난 몇달 동안의 통합과정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총선후보를 공천할 때 공정한 제3자인 공익위원을 두어 공천과정에서의 공익성을 확보하자는 점이다.

지금 우리당은 크게 세 정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세 정파에서 두명씩 6명이 공천조직강화특위를 구성했다. 그러나 우리는 합당과정에서 합의한 대로 이들 이외에 3명의 공익위원을 공동으로 선정해 공천작업에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

각 정파의 이해가 엇갈리지 않는 지역구의 경우 조강특위가 별 어려움 없이 공천을 한다. 그러나 10~20%의 지역구의 경우 계파간의 심각한 경합이 붙을 가능성이 있고, 이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눠먹기식의 공천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나눠먹기를 배제하기 위해 세명의 공익위원이 각 후보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한 것이 바로 이 공익위원 제도이다. 공익위원 제도는 나눠먹기를 지양하는, 즉 우리 정치에 만연한 계파정치를 근절하는 대단히 중요한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후보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힘있는 실력자 밑에 줄을 서는 것이 소용이 없게 된다. 또 공천자 선정을 계파간의 타협과 협상으로 풀 수도 없다. 만약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면 결국 공익위원이 판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총선후보의 공천과정에서 우리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이 100%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이런 제도가 앞으로 우리당을 하나로 만드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번째는 지역에 있는 당원들이 직접 지구당위원장을 선출하는 상향식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는 여러 여건상 당장 이뤄지기는 힘들어 지금은 중앙에서 조직책을 임명해서 내려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위원장의 지역당원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상향식 제도로 바꿀 계획이다. 프라이마리제도를 통해서 당원수가 1백만명에 이르면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사실상 전당대회에 투표권을 갖고 있는 대의원의 구성을 각지구당별로 차등을 두기로 했다는 점이다. 원내냐, 원외냐, 또 득표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 수에 차등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득표율의 성격도 지방감정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냐,위원장 직선제를 할 때 투표참가 당원의 수가 몇명인지를 따져 각 지구당별 대의원수에 차등을 두도록 당헌에 명시했다.

이 제도는 앞으로 각 지구당을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당개혁 덕분에 통합민주당은 과거의 민주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 났다고 말할 수 있다. 세 정파가 따로 따로 합쳐진 물리적인 결합이 아니라 하나로 화합된 그런 전혀 새로운 모습의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이런 당개혁작업은 우리 당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 당이 지역주민과 당원들의 지지에 바탕을 둔 상향식 정당의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까닭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당총재의 얼굴만 쳐다보는 식이 아니라 지역구민들을 위해서 일하고 열심히 의정활동도 펴는 그런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지지받기가 어렵고, 위원장의 위치조차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성 있는 정치가 이뤄질 것이다. 지금은 정치가 워낙에 비생산적이어서 산적한 개혁과제가 있는데도 그 것은 아랑곳 않고 정쟁을 일삼고 있는 점이 많다.

하지만 정당개혁을 통해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고 나면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을 쳐다보면서 일을 하면 된다. 예컨대 점호투표제(법안에 대해서 투표할 때 소속 정당의 결정과 달리 국회의원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투표를 하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널리 알려 보다 많은 표를 확보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국민들의 성숙한 정치의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에 정치에 참여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팽배한 ‘정치하는 사람 따로 있고, 나는 그들과 관계 없다’는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모든 국민이 결국은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정치선진화도 이뤄질 수 있고, 결국 그것이 우리사회의 선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시기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솔직히 이번 기회에 우리가 정치권의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쩌면 앞으로 영영 정치개혁을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노태우비자금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정치의 후진성은 결국 경제의 후진성을 낳고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우리는 절대로 선진국의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몇몇 보스에 따라 움직이는 맹주정치, 지역감정에 의존해 표를 호소하는 지역할거주의를 극복하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길이 곧 우리사회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존경받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


나는 정치에 참여하면서 목사직을 사임했었는데, 그 행동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내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의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정치인이 된다고 반드시 목사직을 사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승만정권 당시 함태영부통령도 목사였고, 야당정치인인 정일형박사도 목사이며 그밖에도 목사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계에 진출한 사람이 많다.

사실 나도 정치참여를 결정한 뒤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한편으로 내가 목사직을 포기하면 혹시라도 사람들이 목사직이라는 성직을 가볍게 여겨서 쉽게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오해를 할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와 반대의 생각으로 목사직을 포기했다. 성직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정치를 하면서 목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나의 정치활동이 자칫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교인들 가운데는 여당지지자도 있고, 야당지지자도 있는데, 내가 어느 특정정당의 정치인으로 있으면서 설교를 하거나 축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교인들에게도 은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내가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인으로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목사직을 사임하고 내가 정치개혁의 임무를 끝내고 다시 시민사회로 복귀할 때 다시 목사로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목사직을 사임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경우 스스로 목사직을 사임했기 때문에 내가 다시 노회에 가서 복귀를 희망하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노회는 다시 내게 목사직을 복귀해주도록 하고 있다.

나는 사실 10년 뒤든 아니면 그보다 조금 당겨질 지는 모르지만, 정치개혁의 임무를 이룬 뒤 시민사회로 되돌아가서 반드시 목사직을 회복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 했던 내 평생의 약속이고, 내가 목사직을 사임한 이유도 목사직이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목사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내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내 정치활동을 목회자적인 자세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런 자세를 잊어버리고 세속적인 정치인들의 행태에 빠지게 되면 나는 다시는 목사가 될 수 없을 것이고, 하느님 앞에서 내가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사실 내가 경실련을 시작한 중요한 계기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을 하겠다는 나의 신앙적 결단 때문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정치를 시작하면서도 반드시 ‘선한 정치를 펴고야 말겠다’는 비슷한 결심을 하고 있다.

설사 내가 정치인으로서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원칙을 견지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이것을 견지하지 못하면 나는 설사 정치인으로서 성공할지언정 인생 전체로 봐서는 실패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목회자적 자세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 과거 내가 시민운동을 하면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정치권에 들어온지 별로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지만 절감하고 있다. 가끔 왜 정치를 시작했는가 하는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속물적인 것, 더러운 것, 피하고 기피하고 싶은 것으로 여겨온 것에 대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편하게 살려면 그야말로 정치는 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입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한다면 정치는 우리사회를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우리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도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에 몸담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척박한 정치풍토에서 정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라도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동안내가 소중하게 지켜왔던 내 삶의 원칙들, 특히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세를 절대로 잃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나라에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실제로 외국을 보면 구정치인 가운데서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지미카터 전미국대통령이다. 물론 카터 전대통령이 재임 당시에는 여러가지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모든 미국시민들이 존경하는 정치인이다.

지미카터는 정치적 역량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아 당시 대통령 재선에도 낙선했지만, 정치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도덕성을 유지했고 전 세계의 인권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점이 그를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남게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존경받는 정치인이 없다.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가 선한정치를 펴면서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확신은 없다. 때로는 모든 말과 행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정치적 계산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되는 정치권의 풍토 때문에 숨막히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긴 호흡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꾸준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 길을 가다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지고 그것이 결국엔 훌륭하고 정의로운 세력을 형성하면서 우리 정치를 맑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권에 들어올 때에도 굳이 무엇을 쟁취하겠다기보다 그곳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더라고 정치 전체가 바르게 되도록 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정치에 참여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경실련을 좀더 키워서 함께 정치할 세력을 만든 뒤 정치권에 대접을 받고 들어가라. 그래야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내가 정치인으로서의 성공만을 꿈꾼다면 지금 현재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것보다 시민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지명도를 높인 다음 정치를 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관심이 앞으로 정치인으로서 무엇이 되겠다는 것에 있지 않고, 이런 낡은 정치를 타파하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정치참여를 하기에 유리한 시기인가 아닌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내가 정치개혁에 동참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그 것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정치참여라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는 그런 자세야말로 오히려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정치권에 진입해서 성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내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경실련과 시민운동에 상당한 타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갖고 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국회의원에 당선하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내 개인적인 측면보다 이런 점이 더 강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부담감은 앞으로 내가 정치인으로 지내게 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실련 운동의 정신을 잃지 않고, 경실련 출신 정치인으로서 모두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영원히 내게 부담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담감은 한편으로 나를 깨끗하고 합리적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선한 정치를 펴는 정치인으로 만드는 고마운 역할도 함께 해주리라고 믿는다.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참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운동권의 되었고, 운동권에서 쫒겨난 뒤 시민운동가가 되었다가 지금은 정치인이 되었다.

나의 종교적인 편력을 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초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한 때는 혁명을 꿈꾸며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시 복음주의자로 되돌아왔고 결국엔 목사가 되었다.

때문에 내 삶을 얼핏 보면 내가 전혀 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이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 ‘꿈꾸는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 속에서 서울 공대에 입학했을 때 나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엔지니어의 삶말고 좀더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엔지니어의 길을 포기하고 사회운동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할 때에도 내 마음 속은 새롭게 시작될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똑같이 잘사는 세상’에 대한 간절한 꿈이 있었다.

미국에 건너가 복음주의신앙을 되찾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사회운동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내게 ‘사람들이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탐구하는 ‘꿈’이 있었고, 그런 나의 꿈이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방이 되는 것처럼 나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켜 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와 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경실련 운동을 5평짜리 사무실에서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내 가슴 속에 들어있는 아름답고 원대한 꿈 때문이었다.

‘서로가 사랑하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내는 운동, 증오에 기초하지 않고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방법이 어떤 것일까’하는 꿈이 그것이다.

나는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도 늘 꿈을 꾸었다. 도시빈민을 도울 때면 도시빈민이 없는 서울시를 꿈꿨고, 한약분쟁을 중재하면서는 갈등과 분쟁이 사라지고 화해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꿈꿨다.

나는 또 우리교회가 35년간 분열되어 하나로 합일되는 것을 꿈조차 꾸기 어려울 때에도 보수교회와 진보교회가 함께 손잡고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세상을 꿈꿨다.

또 나는 이런 꿈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젊은 시절 YH사건이 내게 준 ‘열심히 생각하면 가장 최선의 안을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은 나의 꿈을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주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는 경실련 실무자들에게도 언제나 꿈과 비전을 가져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나의 꿈꾸는 삶에 대한 경험을 들려 준다.

열심히 꿈을 꾸고 그것을 열심히 실현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사회도 우리가 꿈꿔왔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의 모습으로 바뀌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역사는 진보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도 했지만, 나는 역사는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