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증 목사님을 이렇게 모시는 것이 될 일입니까?
-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옛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 -
안녕하세요. 서경석목사입니다.
저는 최근에 박상증 목사님이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선임되셨지만 기념사업회 직원들의 거부로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5개월이 넘도록 이사장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직원들의 반대이유는 박상증 목사님이 지난 대선 때 박근혜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봉급을 5개월째 못 받았습니다. 직원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7,80년대에 진보적인 기독교운동을 함께 하고 옥살이도 함께 했던 옛 동료들도 매우 고통스러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상증 목사님과 같은 민주화운동의 어른을 이런 식으로 모시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옛 운동권들이 박 목사님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다 못해 제가 민주화운동의 옛 동료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게 된 데에는 제 나름의 심경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에 제 삶의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넬슨 만델라에 관한 영화를 보고나서 입니다. 넬슨 만델라가 자기를 박해한 백인들을 용서하고 흑인과 백인 양쪽에 화해와 평화를 요구했던 때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죽고 죽이는 폭력의 악순환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흑인들은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슨 만델라는 불굴의 신념으로 화해와 평화를 계속 설파했고 결국은 흑인과 백인 양쪽을 승복시켜 남아연방에 평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장례식에 전 세계의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전부 참석하여 애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십여년 째 좌파와 우파간의 극단적 대립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서로 너무 치열하게 대립하여 어떤 대화나 타협도 안 됩니다. 그래도 우리의 좌우갈등은 넬슨 만델라 시절의 흑백갈등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넬슨 만델라는 저렇게 심각한 대립상황에서도 화해와 평화를 외쳤는데 우리는 별 것도 아닌 데도 서로 상대방을 증오하고 있음을 깨닫고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동안 온건 좌파들을 향해 “하루빨리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끊어라. 그러면 나는 그 다음 날부터 당신들과 만나 함께 나라의 미래를 도모하겠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좌파진영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새정치연합이 종북좌파세력인 통합진보당과 연대하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북에 대해 진저리를 치는 것도 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진보진영 안에서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새벽이 오지 않았고 여전히 어둠이 남아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인권을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이야말로 좌파진영과의 화해노력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동안 좌파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말만 하고, 진영논리에 갇혀 소신을 말하지 못하는 끔찍한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만델라가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과도 맞섰던 것처럼 우파(右派)진영의 사람들도 오랜 대립과정에서 자기의 잘못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편견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좌파인사들도 진실된 삶, 옳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내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대화하다 보면 틀림없이 우파도 바뀌고 좌파도 바뀔 것입니다. 새벽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새벽이 빨리 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부터 바꾸기로 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나의 옛 친구들을 만나겠습니다. 나는 박형규목사님 사모님, 오재식선생님, 이문영교수님, 김근태 선배님, 나병식씨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등 뒤에 꼽힐 따가운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장례식에 참석겠습니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는 용기부터 키우겠습니다. 한술 밥에 배부를 생각을 하지 않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겠습니다.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하고 반론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옛 민주화운동 동료들에게 박상증 목사님 문제를 말씀드리려는 이유도 이러한 마음가짐의 변화 때문입니다. 박상증 목사님을 이렇게 모시는 것은 정말 잘못되었습니다. 인간적 도리로도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기념사업회의 취지로 보아도 잘못되었습니다. 7,80년대 민주화운동은 우리 국민 모두가 기념해야 할 소중한 역사입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이 아니고 박근혜 후보 지지자도 함께 기념해야 합니다. 30년, 50년 후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십시다. 미국에서 남부 미국인들이 노예해방을 기념하기를 거부한다면 옳겠습니까? 또 북부 사람들이 남부시민들은 노예해방을 기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옳겠습니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박상증 목사님이 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이 될 때 비로소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온 국민의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솔직히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너무도 위태로왔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NLL의 사실상 인정, 연방제 지지, 북한이 주적(主敵)이 아니라는 주장, 북한인권 외면 등을 보고 너무도 많은 국민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해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석기 사태, 장성택 처형 등을 보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나라가 큰일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기념사업에서 배제시킨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직원들은 박상증 목사님을 찾아가 사과하고 그분을 정성을 다해 이사장으로 모셔야 합니다. 이 길만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가야할 길입니다. 단언하지만 박상증 목사님은 절대 사퇴하지 않습니다. 사퇴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기념사업회가 문을 닫는 것이 옳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을 운동권 인사들만의 전유물이 되도록 방치하면 박근혜정부가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기념사업회의 근본 취지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